인사말

한의학에 미래는 있는가?
“辨病診斷體系”가 곧 한의학의 미래

대한상한금궤의학회의 지향점은“康平本 『傷寒論』을 통한 진단과 치료의 직접재현(Direct Replication)”에 있습니다.
대한상한금궤의학회의 지향점은

“康平本 『傷寒論』을 통한
진단과 치료의 직접재현(Direct Replication)”

에 있습니다.

1. 『傷寒論』은 『黃帝內經』과 연계되지 않은 독자적인 진단 치료 서적이다.

『傷寒論』은 後漢末에 만들어진 치료법으로 『黃帝內經』과 연관되지 않은 독자적인 진단, 치료 체계를 가진 의학으로 서지학적 고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傷寒論의 여러 판본 중에서도, 康平本傷寒論 이 가장 오래된 古書이자 原書에 가깝다는 사실 역시 서지학적 고증이 되어 있습니다.
傷寒論『黃帝內經』과 연관되지 않았다는 것은 康平本傷寒論 의 연구를 통해 더욱 구체화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는 傷寒論은 後漢末에 쓰여진 서적이 아닐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의계에서는 여전히 傷寒論의 어떤 板本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규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宋本, 康平本, 桂林本등 다양한 板本 중 어떤 板本이 더 타당할 지에 대한 규정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퀘퀘묵은 논쟁은 과연 정답을 찾을 수는 있는 걸까요?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요?

2. 『傷寒論』의 지향점은 임상의학이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傷寒論의 학문적 지향점에 대해서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그것이 가지는 가치를 규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傷寒論은 臨床書인가요 아니면 生理病理書인가요? 여러분은 傷寒論이라는 학문을 통해 임상의 결과물을 얻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인체를 이해하고 싶으신가요?

傷寒論은 그것이 가지는 목표가 뚜렷한 서적입니다.
傷寒論은 바로 ‘임상서’인 것이지요.
傷寒論은 철저하게 임상적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條文에서 오직 임상적 진단과 치료에 관한 내용만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현대의학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3. 이제는 『傷寒論』을 ‘이해’가 아니라 ‘규정’을 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학문에 대한 연구는 그것에 대한 규정을 목표로 하는 서적과 이해를 목표로 하는 서적으로 나뉩니다.
傷寒論에 대해 그것이 어떤 것을 이해하고자 했다고 설명하는 서적은 수도없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傷寒論의 치료법이 ‘어떤 질병’을 치료한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재현’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 규정한 연구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왜 ‘이해’보다 ‘규정’의 연구가 중요할까요?
한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계를 다룰 때 쓰는 몽키스패너를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줬을 때, 그들은 이것이 만들어진 원래의 목적대로 쓰지 못하고 문패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도구라는 것은 그것이 만들어진 이유와 목적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와 목적에 대한 규정 없이 도구 자체만 가지고 활용하다 보니 만들어진 결과인 것이지요.

傷寒論도 마찬가지로 진단체계의 규정에 대한 연구없이 처방에 대한 이해만 존재하는 연구는 결과적으로 그 쓰임이 의사마다 다르고, 극단적 차이가 존재하며, 서로 모순된 활용법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결과를 야기했습니다.
그나마 일본 의가들이 밝혀 놓은 임상 사료들을 참고하여 그 조차도 규정하려고 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내용들은 傷寒論의 내용에 대한 규정을 하지 못한 채, 오직 처방의 활용도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기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傷寒論에 쓰여진 내용에 관한 규정은 영원한 숙제로 남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4. 『傷寒論』의 해석보다 ‘직접재현’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傷寒論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傷寒論에 대한 판본학적, 서지학적 고찰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傷寒論에 대한 이러한 고찰이 본격적으로 논해진 것은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傷寒論의 원본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宋代의 교정의서국에 이르러서야 겨우 시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교정의서국의 板本傷寒論 역시도 제대로 전달되어 오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단지 宋代가 한참 지난 明代에 이르러 趙開美本 을 통해 宋板本을 간접적으로 살펴보고 있을 뿐이지요.
판본학적 연구를 통해서 교정의서국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되는 傷寒論과 그것보다 5년전에 쓰여진 康平本 傷寒論이 얼마나 큰 차이가 존재하는가 라는 것을 우리는 직접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明代 이후로도 傷寒論이 어떤 치료의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한 ‘직접재현’의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기록은 오직 傷寒論의 내용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기록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것은 傷寒論이라는 임상서를 가지고 그것을 ‘재현’하여 ‘규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오직 ‘이해’만 하려고 했던 탁상공론식 학문태도가 가져온 폐단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이 임상적으로 어떤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 어떻게 재현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확인’ 없이, 이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해석’만 가지고 의학을 하는 것이 현재까지의 傷寒論이 가지는 현상적 한계인 것입니다.

과학자는 ‘해석’과 ‘재현’이 어떻게 다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해석’은 책상 앞에서 언제든 이뤄질 수 있는 일이지만 ‘재현’은 오직 실제 현장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일입니다.
책상 앞에서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것과, 천문학 연구소에서 상대성 이론을 확인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라는 것은 현장에서 일을 해본 사람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의학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의학은 책상 앞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님을 의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의학은 진료 ‘현장’에서 이뤄지는 일이고 현장에서는 ‘이해’라는 관용이 허가되지 않습니다.
오직 “명백한 규정”과 “반복적인 재현”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리고 규정과 재현을 반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재현’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5. 『傷寒論』의 용어는 쓰여진 당시의 시대적 관점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傷寒論을 ‘직접재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傷寒論이 쓰여진 당시의 용어에 대한 이해입니다.
傷寒論에서 사용된 한자의 쓰임을 ‘宋代’의 관점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傷寒論에서 사용된 한자의 쓰임을 ‘21C’의 관점으로 이해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傷寒論의 관점은 오직 그것이 쓰여질 당시의 문자적 특징과 인식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해당 서적이 가지는 서지학적 고찰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痛’이라는 용어는 ‘고통’, ‘통증’에 해당됩니다.
영어로는 ‘pain’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이 쓰여진 당시에도 ‘痛’은 ‘고통’에 해당하는 것이었을까요?
그럼 왜 傷寒論에서는 ‘手足痛’이라는 글자는 쓰지 않았을까요?
가장 흔한 게 ‘손발의 고통’일 텐데 傷寒論에서는 ‘手足痛’이라는 글자가 쓰여 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傷寒論의 ‘痛’은 어떤 의미로 활용되었을까요?
혹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 다른 의미로 쓰여진 것은 아닐까요?

傷寒論의 조문에서 桂枝湯은 ‘頭痛’을 치료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桂枝湯이 치료하는 ‘頭痛’은 어떤 두통에 해당할까요?
편두통일까요? 아니면 긴장성 두통일까요? 아니면 경추성 두통일까요?
桂枝湯의 ‘頭痛’이 어떤 것을 치료한다고 규정하는 내용은 살펴보기도 힘들고 연구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오직 桂枝湯으로 치료했고 그 처방으로 안되는 두통을 치료하는 처방과 연관된 내용만 존재할 뿐이지요.
이것은 桂枝湯으로 어떤 두통을 치료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이 요령만 습득하려고 했던 결과인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을 ‘직접재현’한 결과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일까요?

傷寒論을 재현한다는 것은 ‘이 쓰여진 시대의 용어를 진단 현장에 직접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환자가 호소하는 현상을 통해서 어떤 것을 ‘痛’이라고 쓸 수 있을지, 어떤 것을 ‘滿’이라고 쓸 수 있을지, 어떤 것을 ‘脉’이라고 쓸 수 있을지, 어떤 것을 ‘利’라고 쓸 수 있을지를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학회는 수년간의 노력 끝에 傷寒論에서 말하는 ‘脉’은 글자 그 자체가 생리적 용어가 아닌 병리적 용어임을 파악했고 이 글자 자체로 병적 현상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傷寒論에 등장하는 ‘陰’, ‘陽’, ‘表’, ‘’裏’. ‘寒’, ‘熱’, ‘虛’’, ‘實’이 현대 한의학자들이 八鋼이라고규정하고 사용하는 용어와 얼마나 많은 차이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임상 결과물을 통해서 증명하고 재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후대의 ‘溫病’이라는 것과 傷寒論에서 이야기하는 ‘溫’의 개념은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임상적으로도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인가 라는 것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傷寒論의 ‘溫病’과 온병학의 ‘溫病’은 완전히 다른 병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傷寒論이 쓰여진 용어와 치료기록을 ‘직접재현’해야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임상서’로서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직접재현’한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傷寒論한권만 가지고 傷寒論이 가지는 용어를 직접 임상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傷寒論이 치료하는 질환을 직접 확인하고, 傷寒論이 치료했던 의미를 직접 느껴보는 과정….
이것이 과학자로서, 의사로서 그 소임을 맡은 사람들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는 학회가 바로 ‘대한상한금궤의학회’임을 확신합니다.

傷寒論의 ‘직접재현(direct replication)’을 통해 이 의술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수천년을 넘어선 ‘영혼의 교감’을 가지고 싶은 분들을 환영합니다.

2019년 10월
대한상한금궤의학회 회장 이성준

1) 박경모, 최승훈. 『康平·傷寒論』의 考證을 통한 『傷寒論』과 『黃帝內經』의 비교연구. 대한한의원전의학회지. 1996;9:265-301
2) 大塚敬節 著. 박병희 역 임상의학 상한론해설